"인도의 후궁 제도는 고대 인더스 문명기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굽타 왕조기에 그 화려함은 극치에 달했다. 후궁에는 규방녀들이 230명이나 시중을 들고 있었고, 국왕에게는 수백 명을 헤아렸다...바챠야나는, 왕은 애첩 모두에게 만족을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동방의 후궁처럼, 시녀나 하녀들에게 남장을 시켜 나무뿌리나 열매 등으로 남자 성기 모양의 노리개를 만들어 그것으로 애첩들의 정욕을 진정시키라고 가르치고 있다."

딜도는 기원전 3세기경 고대 그리스부터 이미 널리 알려진 발명품 중 하나였다. 오리보스로 불렸고,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개사회에서도 초로 만든 원시적 형태의 딜도가 발견되기도 한다. 사실상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도구인 셈이다. 이 도구는 물론 개개인의 사적인 즐거움을 위해서도 쓰였겠지만, 기록에 의하면 고대 왕실의 후궁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로도 쓰였다고 한다. 아무리 왕이라도 수백 명이나 되는 여성을 거느리며 모두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도의 굽타 왕조는 책을 통해 왕을 대신해 후궁들을 만족시켜줄 만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하녀나 시녀를 남장시킨 후, '나무뿌리나 열매 등으로 만든 남자 성기 모양의 노리개'를 그들에게 들려 후궁에게 왕 대신 보내는 방법이 그것이다. ‘카마수트라’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